인터뷰 시리즈는 컨텐츠의 최전선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건축과 컨텐츠 기획을 결합시킬 수 있는 다양한 인사이트를 공유하기 위해 간삼 건축 G.BI 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미식 블로거 레이니로 널리 알려진 R고기의 박찬익 대표다.

박찬익 대표는 그 동안 미식 블로거로 활동하며 오랜 기간 누적해온 이야기들부터, R고기를 운영하며 터득한 유용하고 재미있는 노하우들을 풀어 놓으며, 컨텐츠 기획의 바탕이 되는 다양한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었다.

Part 1. 미식 블로거, 레이니

인터뷰의 시작은 당연히 블로그에 관련한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현재 2005년 12월에 올리신 게 블로그의 첫 글입니다. 햇수로 13년가량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계신데,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네이버 블로그가 생기기 이전부터 먹었던 것이라던가 그날의 기록들을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일기장처럼 올렸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싸이월드는 글의 길이나 올릴 수 있는 사진의 용량이 제한되어 있어 리뷰를 디테일하게 쓰기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네이버 블로그가 글을 올리기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블로그에 글을 업로드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올린 것이라기 보다는, 일기장 쓰듯이 제가 즐겼던 일상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였어요. 물리적으로 남겨 둔 기록은 유한한데, 인터넷에 기록을 남겨두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20년 전에, 30년 전에,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쉽게 기억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꾸준히 글을 올리다 보니 감사하게도 블로그 방문객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더라고요.

블로그를 보면 관심사가 아주 다양하시잖아요? 초반에도 음식의 비중이 높긴 했지만, 와인, 오디오, 음반 등의 이야기도 많았는데, 특별히 음식이라는 컨텐츠에 집중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제가 가장 자주 하는 취미 생활이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어요. 매일 세 끼를 먹고, 맛있는 것을 찾아 다니며 먹는 편이니, 항상 포스팅 할 거리가 쌓이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오디오나 음반 컬렉션, 카메라에 관심이 아무리 많더라도, 밥을 먹는 것만큼 자주 하는 취미 생활이 없는 거죠. 카메라를 아무리 좋아해도 매일 카메라에 대한 글 쓸 거리는 없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블로그에 음식에 관련된 글을 위주로 올리게 되었어요.

음식에 대해 포스팅을 한다는 것이 음식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것이라 조금 부담스러우실 것도 같은데요.

크게 부담스럽진 않아요. 포스팅을 하면서 누군가를 의식하진 않거든요. 항상 저는 제 개인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고, 그 일기를 남이 와서 보는 것이니, 크게 의식하지 않으려 해요. 어떤 날에는 그 집에서 먹었던 음식이 별로였는데, 다음에 갔을 때는 만족스러운 경우도 많잖아요? 저는 그날 먹었던 음식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려고 하기 때문에, 한 집에 대한 평가가 꾸준히 좋은 곳도 있고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곳도 있어요. 제 글은 그 날 제가 얼마나 만족했는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 평가 한다는 것에 대해 크게 부담은 없어요.

Part 2. R고기 대표, 레이니

R고기도 운영한지 벌써 3년이나 되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가게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원래 개인 사업을 했었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 사업을 접고 1년만 놀아보자! 하고 결정을 내렸죠. 1년이 3년이 되긴 했지만  (일동 웃음)  놀면서 맛집 포스팅을 열심히 했네요. 3년 놀고 나서, 어느 날 투자사에서 일하는 선배 형을 만났어요. 형과 술을 마시면서 심심함을 토로하다가, 고깃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니 투자를 맡아 줄 테니 같이 하자고 해서 일을 진행하게 되었죠. 저는 운영, 그쪽은 인사, 관리, 회계 쪽을 맡아서 해 줍니다. 저는 매입과 매장 관리만 컨트롤 하면 되니까 편하죠. 서로 윈윈하는 관계에요.

즐기는 것을 일로 삼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다행히 정말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요. 평소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쌓인 네트워크가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고깃집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는 전국을 다니며 전라도부터 강원도까지 훑었습니다. 전국 순례 중 제일 맛있었던 고기집을 찾아 뵙고 서울에 고깃집을 하려고 한다 말씀 드리고 도움을 요청 드렸죠. 사장님이 흔쾌히 도움을 주기로 하셔서, 소개받은 업자를 통해 고기를 납품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소에 음식을 즐기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요. 음식점을 하려면, 오너가 음식을 만들 줄 알아야 하거든요. 오너가 음식을 모르면 셰프에게 끌려 다니게 되죠. R고기의 모든 레시피는 제가 만든 거에요.

R고기는 고기에 페어링 할 주류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게 R고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네. R고기는 고기와 페어링 해 마실 수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와 와인 리스트를 항상 높은 수준으로 관리하고, 실제로 그 판매량이 꽤 됩니다. 음식점에서는 음식 매출도 중요하지만 주류의 매출 비중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음식점에서 팔 수 있는 최대의 음식 매출은 정해져 있지만 주류 매출의 최대치는 없거든요. 저희 가게는 보통 음식점의 주류 매출 비중보다 훨씬 높은 주류 매출 비중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는 주류 반입 서비스를 하지 않아요. 저희 가게에서 술을 사서 마시는 손님들에게 더 집중하자는 전략이고, 그 분들을 위해 더 좋은 주류 리스트를 확보하고자 하는 게 저희의 특징이에요. 결국 주류의 매출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가 가게의 순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프리미엄 고기집이 계속 등장하는데도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하는 R고기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단순해요. 커피로 예를 들어볼게요. 커피를 내릴 때도 누가 더 맛있게 만드는가는 아무리 기교를 부려도 재료의 질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내리는 것도, 바리스타의 온갖 복잡한 기술보다는, 신선하고 맛 좋은 생두를 그 맛이 가장 덜 깎여나가게 로스팅을 하고, 바리스타는 로스팅된 커피의 맛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 맛을 가장 잘 살려 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기도 마찬가지에요. 일단 고기를 가장 맛있는 고기를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고기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도록 고기를 굽는 방법을 개발하고, 모든 직원에게 교육해서 손님들이 가장 맛있게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결국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혹시 고기의 맛 이외에도 손님을 특별히 불러 모으는 컨텐츠가 있을까요?

차별점을 갖는 컨텐츠 중 고기와 페어링 할 수 있는 주류 리스트도 있지만, 사이드 메뉴들도 인기가 많아요. 가게에서 수익성 남기지 않고 만들어서 파는 미끼메뉴라고 할까요? 그 중 하나가, 갈비탕이에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데 인기가 아주 많아요. 경매로 갈비를 받아와야 할 수 있는 거기 때문에 저도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기도 하지만, 손님들에게 언제 판매하는지 안 알려드리고 만들죠. 경매로 소갈비 두 짝(한 마리 분)을 들여오면 45인분정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한 그릇당 가격이 싸진 않은데 원가가 판매가보다 만원 더 높으니 저희에겐 밑지는 장사죠. 근데 그 메뉴를 먹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많으니 성공적 컨텐츠라고 할 수 있겠네요.

Part 3. 식음 컨텐츠 전문가, 레이니

식당을 운영하며 공간적으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으신가요?

음식을 다루는 공간은 결국은 실용성이라는 핵심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식당을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동선을 구성하는 거에요.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이동하기 쉬운지, 스탭들이 이동하기 쉬운지 동선을 효율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죠. 외관만 화려한 것보다 결국 쓰임새에 잘 맞춰진 건물이 손님에게도, 음식을 파는 사람에게도 오래 남는 공간이 되겠죠.

R고기는 1층에 위치해 있다가 지하 공간까지 확장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공간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요?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찾아와서 기회가 되어 지하까지 매장을 확장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확장하면서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인력의 배치에요. 1층에 열 명의 직원이 있으면 지하에는 다섯 명만 있어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하에도 똑같이 열 명의 직원이 필요하더라고요. 공간을 배치할 때 층이 분절 되는 것이 큰 마이너스라는 것을 배웠어요. 이런 요인들이 운영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니, 설계할 때 고려할 부분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저는 다시는 아래위로 나뉜 가게 안 할 거에요.  (일동 웃음)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나누신 건 줄 알았어요.

맞아요. 처음의 의도는 그렇게 해서 지하층에는 룸으로 구성된 공간을 두어 프라이빗한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죠. 근데 운영 비용의 상승은 고려하지 못했던 거고요. 그리고 룸은 하루에 한 텀 돌리면 거의 끝이에요. 1층의 테이블 공간은 하루에 두, 세 텀 정도 돌아가는데, 지하층의 룸은 옆 테이블도 없고, 창도 없으니 시간이 가는 것에 대해 둔감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대신 오래 머무르기 때문에 객단가는 더 높아요. 운영하는 입장에서 장단점을 모두 가진 곳이긴 하죠.

컨텐츠의 관점에서 식음 문화의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유행에 따라 여러가지 변화를 계속 겪겠지만 한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은 외식을 할 때 한식, 중식, 분식, 일식 순으로 선호가 높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안이나 프렌치도 많이 먹지만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죠. 한식은 일주일에 세번 먹어도 질리지 않잖아요. 제가 고기집을 하는 것도 소비층이 꾸준히 소비할 수 있는 컨텐츠를 고민하면서 나온 결과물이죠. 사업성의 측면에서도 자주 들릴 수 있는 컨텐츠가 더 좋을 것이고요. 한식이라면 한식, 양식이라면 양식 자체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린 요리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가 보셨던 호텔 중에 인상 깊었던 호텔이나, 호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으신가요?

저는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첫 번째는 호텔 컨시어지에서 예약을 잘 해 주느냐 에요. 일본 고급 레스토랑들은 해외에서는 예약이 어려운데, 호텔 컨시어지에 미리 말하면 거의 예약이 가능하거든요. 호텔과 레스토랑 사이의 로열티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룸 서비스에요. 룸 서비스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퀄리티가 높은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결국 저는 음식에 관련된 서비스를 호텔을 고를 때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둔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럼 호텔 객실에 다이닝 공간이 갖춰져 있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제가 교토 여행을 다녀왔는데, 주방이 갖춰져 있는 레지던스 호텔에 묵었어요. 그 동안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일본 와규로 요리를 해 보는 것이었거든요. 와규는 한국에 반입이 안되니까요. 그래서 백화점 식품부에 가서 와규와 다른 재료들을 구매해서 호텔에서 요리를 해 먹었는데 아주 좋았어요. 저는 호텔 안에 다이닝 공간을 갖추려면 한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호텔 객실에 조리 공간이 갖춰져 있다면, 호텔 안에 그로서리 마켓을 함께 두고 최고급 식재료들을 사서 객실로 올라가서 조리를 하는 과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리츠칼튼 호텔에도 지하에 굉장히 큰 규모의 마켓이 들어가있거든요. 서울에서 모든 재료를 사서 바리바리 싸 들고 호텔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호텔 객실 안에 조리기구만 잘 갖춰져 있다면 사람들이 그 곳에 묵기 위해 오지 않겠지만 좋은 조리기구와 식기구, 거기에 신선한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을까요?